자연보호단체

자연보호단체

환경지킴이! 제주환경연구센터

순수자생 자연보호단체는 제주가 처음

  • 제주민들은 예로부터 자연을 숭배하는 사상이 있었다. 산과 오름은 물론이고 거대한 나무와 돌 등을 신격화했고, 조선조 후기엔 마을에 동수감 제도를 두어 마을나무들을 보호하기도했다. 그러나 자연을 보호하고 보전하기 위한 집단적인 활동은 없었다.
    일제시대부터 한라산 국유림지대에서 자연림을 벌채해 표고버섯을 재배하고, 연료인 장작과 샘산을 위한 국유림 남벌은 한라산을 황폐케하는 주원인이 되었다.

    1961년 5.16 군사정부가 한라산 동쪽 허리 천연림 지대를 뚫어 천연림을 벌채하는 계획에 반대하는 제주자연보호회(초대회장 제주은행장 김봉학, 작고)가 1972년 자생적으로 셜립되었다 구성원들은 언론인과 초·중·고 교사들, 제주대학 교수들, 산악인, 그리고 사회인사들 등 100여명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연구기관 외에 순수한 자생적 자연보호 단체가 없었으며 제주가 처음이다. 자연이 가장 잘 보존되어 오늘의 제주를 있게 한 계기이다.

    이 제주자연보호회가 모태가 되어 담시 국내에 유일한 자연보조 학술단체인 한국자연보존협회의 제주지부가 만들어졌고 중앙단체와 연계한 제주자연 보호운동이 본격화되었다.

정부의 계발의지에 체계적 대용 필요

  • 정부는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 관광을 위한 제주도 개발을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제주 자연환경의 무차별적인 파괴가 시작된 것이다.

    한라산 5.16도로변 너비 600m 사이에 있는 천연림을 모두 벌채하는 것을 비롯해, 한라산 성판악에서 백록담까지 도로를 건설해 자동차로 백록담 구경을 시키겠다는 시책,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케이블카 설치문제, 그리고 성산 일출봉에 관광호텔 건축(후에 막대한 예산으로 철거)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자연환경에 대한 기초조사와 보전대책을 체계적으로 통합시키는 연구가 전혀 수반되지 않은 채 인위적인 토목개발에만 치중해 제주의 자연환경 기반이 크게 위협 받기에 이른 것이다. 개발이 계속되면 제주의 기본적인 자연이 영구히 복원 불가능한 상태로 훼손될 것이므로, 자연환경을 이용한 개발과 보존문제를 학문적, 체계적으로 접근할 필요성이 절실하였지만, 정부의 개발의지에 맞서 체계적으로 대응할 단체가 없었다. 이런 시대적 배경이 사단법인 제주환경연구센터 설립의 계기가 되었다.